노천명 고별

 

고별
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
우뢰 같은 박수를 보내 주던 인사들
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
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.
청춘을 바친 이 땅
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.
고도(孤島)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-
나를 보내 다오
뱃사공은 나와 방언(方言)이 달라도 좋다.
내가 떠나면
정든 책상은 고물상이 업어갈 것이고
애끼던 책들은 천덕구니가 되어 장터로 나갈게다.
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시기하던 이들
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
마지막 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
우정이라는 것 또 신의라는 것
이것은 다 어디 있는 것이냐
생쥐에게나 뜯어먹게 던져 주어라
온갖 화근이었던 이름 석 자를
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.
나를 어느 떨어진 섬으로 멀리멀리 보내 다오.
눈물어린 얼굴을 돌이키고
나는 이곳을 떠나련다.
개 짖는 마을들아
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(村家)들아
잘 있거라
별이 있고
하늘이 보이고
거기 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-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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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y 부드러운보컬 2014. 3. 20. 10:04